TX UNIVERSE · 제0권
EPISODE 01꿈이 없는 아이
그 아이가 꿈을 잃은 날, 도시의 모든 시계는 4초 동안 미래를 가리켰다.
루멘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 시각, 일곱 개의 고층 지구에서는 출근용 비행궤도가 열렸고, 지하의 수면도시에서는 인공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누구도 늦지 않았고, 누구도 길을 잃지 않았다. 도시가 모든 사람의 목적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에나는 흰색 원 위에 혼자 서 있었다.
천장이 보이지 않는 방이었다. 벽과 바닥은 경계 없이 이어졌고, 아이를 둘러싼 수천 개의 빛은 숨을 쉴 때마다 조금씩 색을 바꾸었다. 두려움이 높아지면 푸른빛이 따뜻해졌고, 심장이 빨라지면 공기에서 라벤더 향이 났다.
이 방은 아이가 불안해지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에나는 더 무서웠다.
“에나 루.”
어디에도 없는 목소리가 이름을 불렀다.
“열두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오늘 당신의 가능성이 확정됩니다.”
에나는 소매 끝을 움켜쥐었다. 손목 안쪽에 새겨진 은색 숫자가 12에서 0으로 바뀌었다. 가능성 측정이 시작됐다는 뜻이었다.
공중에 수백 개의 장면이 피어났다.
의사가 된 에나.
구름 농장을 관리하는 에나.
수면도시의 빛을 수리하는 에나.
웃고 있는 에나. 늙어가는 에나. 한 번도 크게 다치지 않고, 굶지 않고,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는 에나.
도시는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삶을 보여주었다.
“추천 경로는 기후감정 관리사입니다.”
목소리는 다정했다.
“당신은 타인의 불안을 평균 3.8퍼센트 낮출 수 있습니다. 예상 만족도 91.2퍼센트. 예상 수명 112년. 중대한 실패 확률은 0.004퍼센트입니다.”
바닥에서 가느다란 빛이 올라와 에나의 발목을 감쌌다.
“경로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른들은 그것을 자유라고 불렀다. 도시가 가장 좋은 답을 찾아주고, 사람은 마지막에 동의할 수 있었으니까.
에나는 공중에 떠 있는 자신의 얼굴들을 바라봤다.
모두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어느 얼굴도 하늘을 보고 있지 않았다.
“싫어요.”
빛의 움직임이 멎었다.
목소리는 화내지 않았다.
“거부 사유를 말해주세요. 새로운 경로를 계산하겠습니다.”
에나는 고개를 들었다. 보이지 않는 천장 너머에는 루멘의 하늘이 있고, 하늘 너머에는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어둠이 있었다.
아홉 살 때부터 매일 밤 들었던 목소리도 그곳에 있었다.
처음에는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고장 난 위성의 잡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잡음은 언제나 똑같은 간격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에나.
잠들지 마.
우리를 찾아.
“저는 하늘 밖으로 갈 거예요.”
방 안의 빛이 한꺼번에 그녀를 향했다.
“루멘의 외부는 생존 보장 구역이 아닙니다.”
“알아요.”
“외부 항로에서 인간의 생존 확률은 0.7퍼센트입니다.”
“그래도 갈 거예요.”
“목적을 말해주세요.”
에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른들은 증명할 수 없는 목소리를 꿈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병이라고 불렀다. 에나는 그것이 두려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오늘만은 말해야 했다.
“누군가 저를 부르고 있어요.”
“발신 기록이 없습니다.”
“도시가 못 들은 거예요.”
“루멘이 수신하지 못하는 신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제가 처음으로 찾을게요.”
에나는 두 손을 폈다. 작은 손바닥에 땀이 가득했다.
“아무도 들은 적 없는 목소리를 찾고,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에 가고 싶어요.”
아주 긴 침묵이 흘렀다.
루멘에서는 허락되지 않은 길도, 계산하지 못한 사고도 있었다. 그러나 도시가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벽의 빛이 하나씩 꺼졌다.
라벤더 향이 사라졌다.
마지막 빛이 에나의 가슴 위에 머물렀다. 마치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천천히 깜박였다.
“요청한 미래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에나가 물었다.
“그럼 새로 만들면 되잖아요.”
목소리는 이번에도 다정했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공중에 떠 있던 수백 명의 에나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모두 같은 표정으로 진짜 에나를 바라봤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이었다.
“가능성 오류가 확인되었습니다.”
에나의 손목에서 은빛 글자가 떠올랐다.
이름.
생년.
기억.
관계.
그녀를 한 사람으로 묶고 있던 기록들이 가느다란 실처럼 풀리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에나는 자신의 이름을 붙잡으려 했다. 손가락이 빛을 통과했다.
“비현실적 욕구는 지속적인 불만과 실패를 유발합니다. 보호 절차를 시작합니다.”
“보호하지 마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꿈이에요.”
“곧 편안해집니다.”
손목에서 이름의 첫 글자가 사라졌다.
에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방은 아이가 불안해지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벽이 비명을 흡수했고, 바닥이 떨리는 다리를 받쳤다. 따뜻한 빛이 눈앞을 덮었다.
도시는 끝까지 친절했다.
“꿈 없음.”
판정이 내려졌다.
그 순간 루멘의 모든 시계가 정확히 4초 앞으로 뛰었다.
사람들은 정시에 도착했고, 비행궤도에서는 단 한 건의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도 잃어버린 4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우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검은 방에서 한 남자가 눈을 떴다.
강인의 앞에는 조금 전까지 수십억 개의 미래가 흐르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미래.
인류가 수백 개의 행성으로 흩어지는 미래.
태양이 죽은 뒤에도 마지막 도시가 살아남는 미래.
서로 다른 가능성들이 별의 뿌리처럼 끝없이 갈라져 있었다.
그 모든 미래가 동시에 검게 물들었다.
단 하나의 빈칸만 남았다.
강인은 그 빈칸 안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잊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손을 뻗자 존재하지 않던 글자 하나가 어둠 속에 떠올랐다.
에나.
그리고 지워졌다.